| “기윤에게도 말했지만 이렇게 말라죽는 꼴은 못 보겠습니다. 기윤도 힘들겠지만 옆에서 바라보는 사람도 괴롭거든요.”
이나드 황자에게 하는 설명인 것과 동시에 기윤을 향한 설득이기도 했다. 기윤은 단호한 하스차의 눈빛을 받아내며 조금 쓰게 웃었다. 차라리 그냥 죽었더라면 그녀는 신경 따윈 쓰지 않았을 것이다. 살아 있으니 귀찮더라도 이렇게 챙겨 주는 것이리라.
하스차의 진심을 읽어낸 이나드 황자도 힘을 내라고 기윤의 등을 툭툭 두드려 주었다.
“필요한 것 있으면 말해. 람찻도 걱정하고 있고 나도 도와 줄 테니까.”
혼자가 아니라고. 수는 적지만 그래도 널 걱정하는 사람이 있다고 하스차와 이나드 황자가 말하고 있었다. 기윤은 눈물을 참기 위해 고개를 숙였다.
죽고 싶었지만 그래도 살아있기를 잘했다고, 아주 잠깐 뿐이지만 기윤은 그렇게 생각이 들었다.
다음날, 이나드 황자는 기윤의 처소에 쉴마루안 최고의 재단사를 데리고 왔다. 이그라임 황자로부터 받은 비단과 람찻이 보낸 비단을 방 한가득 펼쳐 옷감을 고르고 치수를 재도록 했다. 비단 자락에 파묻힌 기윤은 어쩔 줄 몰라 했다. 한 번도 이렇게 화려한 비단을 두고 옷을 만들어 입겠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기윤은 극구 거절을 했지만 이나드 황자는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기윤에게 충고했다.
“지금 입고 있는 옷으로 될 것 같아? 눈에 뛰지는 않더라도 최소한 촌스럽단 소리는 듣지 말아야해. 계절마다 필요한 옷이 몇 벌인데 지금부터 준비해도 늦었어.”
7살 때까지 어머니와 함께 황제궁의 후궁에서 지냈던 이나드 황자는 이 바닥의 생리를 잘 꿰고 있었다. 전직 무희였던 이나드 황자의 어머니는 아름다운 미모로 황제의 눈에 들어 첩이 되었다. 그녀는 언제나 자신을 치장하고 꾸미는데 열과 성을 다 했다. 여긴 누구보다 라보용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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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예에 남자라는 것부터 출발점이 다른데 기윤의 몇 벌 되지 않는 옷으로는 얕보이기 십상이었다. 게다가 이런 일에 세세하게 신경 쓸 형님이 아니라는 것을 이나드 황자가 알기 때문에 그가 나서서 기윤을 챙기려고 했다. 입고 있는 옷과 장신구로 비교당하고 놀림을 당하는 것을 두고 볼 순 없었던 것이다.
바람둥이인 이나드 황자는 멋쟁이였다. 뛰어난 눈썰미로 고르고 고른 보석과 비단, 장신구를 펼쳐두곤 기윤을 꾸미는데 열을 올렸다. 그럴 때면 하스차도 찾아와 조언을 해 주었다. 이나드 황자와 하스차는 오래전부터 잘 알고 지냈던 사이처럼 호흡이 잘 맞았다. 푸른 옥을 실로 뽑아 만든 섬세한 짜임의 비단과 일일이 금실 수를 놓은 허리끈, 비단 신발, 목걸이와 팔찌 등을 골라 기윤에게 입히고 걸치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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