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히 형과 나는 행운아였습니다. 아버지는 쉬카고 시내에 있는 월로비 타워에서 엘리
베이터 기사로 일했고, 어머니는 가정주부인 동시에 쉬카고 체육관의 청소부였지요. 아
버지는 거의 하루종일 일했기 때문에 아버지를 본 적이 거의 없고, 우리 사이에는 대화
도 별로 없었습니다. 당시에 소수 민족 가족의 상황은 보통 그랬지요. 하지만 어머니는
그야말로 항상 우리 곁에 계셨습니다.
우리 부모님은 가진 것이 별로 없었습니다. 어머니의 옷장을 보면 정장이 두 벌밖에
없었습니다. 아주 단정하게 손질되어 있기는 했지만, 단 두 벌뿐이었어요. 비록 가진 것
은 없었지만 우리 부모님은 한편으로는 모든 것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우리 집안에는
사랑과 자부심이 넘쳐흘렀습니다.
나는 보살핌을 받는 분위기 속에서 자랐습니다. 우리 부모님과 형 그리고 친구 모 밀
린스키는 내가 하는 일은 무엇이든 괜찮다고 여기게 해주었습니다. 그들은 내게 일어나
는 일은 모두 자신들에게 일어난 일처럼 여겼습니다.
스포츠와 관련된 일이 가장 먼저 생각나는군요. 나는 배곧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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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톨릭계 예비학교인 웨버 고등
하교에 들어갔는데, 농구에서 포인트 가드로 제법 잘 해냈습니다. 우리 부모님은 나를
그 학교에 보내기 위해 별도의 돈을 지불하셨지요. 모 밀린스키는 우리 라이벌인 고든
공업학교에 갔는데, 우리가 고든 공업학교와 경기를 하면 언제나 자기 학교보다 나를
응원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내가 경기를 잘하면 다가와서 "이봐, 믹(그 당시 내 별명),
정말 대단한 경기였어." 라고 말해주었지요. 그의 눈에는 진심으로 축하한다는 표정이
담겨 있었습니다.
그리고 나를 우리 집까지 태워다 주었습니다. 그는 친구 중에서 유일하게 차를 가지
고 있었지요. 집에 오는 내내 그는 내가 경기를 아주 잘했다고 자꾸 말해주었습니다.
그리고 집에 들어서면 어머니가 기다리고 계셨습니다. 나를 격려해 주기 위해서지요.
경기장에 직접 오실 때도 있었습니다. 어떤 때는 경기장에 오셨는데도 아무 말씀도 안
하셨기 때문에, 어머니가 관람석에 게셨는지조차 모를 때도 있었습니다.
어머니는 내 경기가 아주 훌륭했다고 하시며, "네가 정말 자랑스럽구나."라고 몇 번
이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는 내 기분은 어떠냐9고 물으셨지요. 사실 어머니가 기다
리셨다는 사실, 시간을 내셨다는 사실이 몇 마디 대화를 한 것보다 나에게는 더 의미
있게 여겨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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